한화세미텍이 SK하이닉스와 210억원 규모의 HBM(고대역폭메모리) 제조용 핵심 장비 TC본더 공급 계약을 맺었습니다.
어제(3월 14일) 공식 발표된 이번 계약은 한화세미텍이 SK하이닉스의 까다로운 최종 품질 검증(퀄테스트)을 성공적으로 통과한 결과죠. 장비를 납품하는 이번 계약은 한화세미텍이 HBM용 TC본더를 실제 고객사에 공급하는 첫 사례라 더욱 의미가 깊습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지난해 10월 직접 장비 시연을 지켜본 지 불과 4개월 만에 이룬 성과로, 국내 반도체 장비 기술력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산 TC본더로 승부하는 한화세미텍의 기술력
TC본더(Thermal Compression Bonder)는 AI 반도체용 HBM을 제조하는 핵심 장비인데요, 생소하게 느껴지실 수도 있지만 그만큼 중요한 장비입니다. HBM은 여러 개의 D램 칩을 수직으로 쌓아 만드는데, TC본더는 이 과정에서 D램에 열과 압력을 가해 정밀하게 고정하는 역할을 합니다. 쉽게 말해 반도체 칩들을 '샌드위치'처럼 정확하게 쌓아 올리는 장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한화세미텍의 TC본더 'SFM5-Expert'는 장비 헤드에 장착된 4개의 스핀들로 다이(Die)를 웨이퍼에 빠르고 정확하게 부착합니다. 십자형 플리퍼는 다이를 뒤집어주는 장치이고, '온더플라이(On the Fly)' 스캐너 기능은 다이 위치를 실시간으로 정밀하게 감지합니다. 이런 첨단 기술들이 HBM의 생산 효율성과 수율을 크게 높여주죠.
한화세미텍은 2020년부터 TC본더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4년간의 연구개발 끝에 드디어 상용화에 성공한 거죠. 특히 지난해 퀄테스트를 본격 시작한 후 약 1년이라는 짧은 기간 내에 SK하이닉스의 까다로운 품질 검증을 통과했다는 점이 정말 놀랍습니다. 이는 한화세미텍의 기술력이 글로벌 수준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볼 수 있는데요.
그동안 한미반도체 독점이었던 SK하이닉스 TC본더 시장 지각변동
이번 계약은 TC본더 시장에 큰 지각변동을 일으킬 전망입니다. 그동안 SK하이닉스에는 한미반도체가 TC본더를 독점 공급해왔는데요, 한화세미텍의 등장으로 구도가 바뀌게 됐습니다.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공급망 다변화를 통해 안정적인 HBM 생산 체계를 구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한화세미텍은 기존 공급사인 한미반도체, ASMPT 등을 제치고 '1차 공급사'로 입지를 굳힐 수도 있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이죠.
한화세미텍의 TC본더의 다양한 강점들이 SK하이닉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차세대 반도체 패키징의 혁명, 유리기판 기술
TC본더 기술과 함께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혁신 기술이 바로 유리기판(Glass Substrate)입니다. 기존 반도체 패키징에 사용되던 플라스틱 유기기판과 달리, 유리기판은 열과 뒤틀림에 대한 저항성이 뛰어나고 더 많은 칩을 적층할 수 있어 AI 시대의 핵심 기술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리기판이 실제 반도체 산업에 적용되기까지는 몇 가지 중요한 기술적 과제가 있습니다. 가장 큰 난관은 유리 가공 기술입니다. TGV(글래스관통전극) 공정에서 레이저로 홈을 판 후 식각으로 완전한 형태를 만드는 과정에서 미세 균열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수십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TGV를 만들면서 가해지는 충격이 문제인데, TGV 공정 단계에서는 큰 문제가 없더라도 추가 공정이나 이동 시 미세 균열이 커지면서 유리가 깨지거나 찢어지듯 들떠버리는 '세와레(SeWaRe)' 현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또한 구리와 유리 간 접착력이 떨어지고, TGV 홀 내부에 크랙이나 보이드(빈 공간)가 생기는 문제도 해결해야 합니다.
엔비디아 공급체인 합류, 글로벌 시장 공략 시작
이번 계약으로 한화세미텍은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을 선도하는 '엔비디아 공급체인'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에 HBM을 공급하고 있어, 한화세미텍의 장비가 간접적으로 엔비디아 제품 생산에 기여하게 된 것이죠. 이는 한화세미텍의 기술력을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는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특히 엔비디아는 AI 반도체 시장에서 과반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절대 강자입니다. 그 공급망에 들어갔다는 것은 전 세계 반도체 업계에서 한화세미텍의 위상이 한층 높아졌다는 증거죠. 앞으로 AMD, 인텔 등 다른 AI 반도체 제조사들의 공급망에도 진입할 가능성이 열렸습니다.
김동선 한화세미텍 미래비전총괄 부사장은 "이번 성과는 시장 진입의 첫 신호탄에 불과하다"며 "차별화된 기술력과 품질을 앞세워 글로벌 톱티어 회사로 거듭날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습니다. 김 부사장은 무보수로 한화세미텍에 합류해 기술 혁신을 이끌고 있어 화제가 되기도 했죠.
한화세미텍 관계자는 "플립칩 본더 등 기존 자체 보유 기술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HBM TC본더 연구개발에 지속적으로 공을 들인 끝에 비로소 좋은 결과를 얻었다"며 "이번을 계기로 시장 확대에 속도를 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글로벌 HBM 시장과 AI 수요 급증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글로벌 HBM 시장은 AI 수요 급증으로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82억 달러(약 26조5000억원)였던 시장 규모가 내년에는 467억 달러(약 68조원)로 156% 성장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러한 성장세 속에서 한화세미텍은 반도체 전후 공정을 아우르는 다양한 시장에 적극 진출한다는 계획입니다.
최근 '한화정밀기계'에서 '한화세미텍'으로 사명을 변경하며 반도체 장비 전문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한화세미텍. 이번 SK하이닉스 계약으로 첫 발을 내딛은 지금, 글로벌 반도체 장비 시장에서 한화세미텍이 써 내려갈 새로운 이야기가 기대됩니다.
다음 편에서는 AI 시대 HBM 시장의 폭발적 성장과 한화세미텍의 기회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